부활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장 29절
하트교회 차명권목사님
요한복음 1장 29절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부활하신 주님을 이 시간 온전히 바라보게 하시고 살아계신 주님을 온전히 만나는 예배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주님이 살아 나셨습니다. 캄보디아 서 선교사님이 또 찬양으로 귀한 나눔을 해주셨는데 오늘 선교헌금 드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또 기도로 준비하셨을텐데 선교헌금이라고 기입해 주셔서 헌금해주시면 잘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나누기 전에 먼저 우리 선교사님한테서 전해왔던 짧은 편지지만 짧은 사연을 잠시 읽고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코로나의 여파이겠지만 모두가 선교지에서 생활에서의 관심과 배려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 살아계신 주님만 바라봐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찬양을 하며 눈물을 보이곤 합니다. 이렇게 기도와 관심으로 많이 다운되어 있는 미천한 자에게 또 힘이 되어 주시네요 목사님 선교사가 현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체도 힘에 겨울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주신 사명이 있기에 감당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자립을 위해 기도하며 여러가지로 준비하고 있는데 일차는 오리를 키워보려고 했지만 많치는 않았지만 모두 폐사하고 말았습니다. 현재는 길거리에서 음료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장사는 주로 오후시간부터 새벽 5시까지 하고 있고 국도변이라 지나가는 차와 오토바이 손님들이 찾아오고 특히 주님께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찾아오게 하셔서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본금 없이 시작을 해서 물건 수급에 어려움은 있습니다. 이렇게 힘든 시간에 마침 연락을 주셨습니다. 늘 새벽 시간 다니는 차들도 줄어 들때에 목사님 영상을 보며 많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늘 내 안에 가득하기를 소망하고 이곳에서 하나님 부르시는 날까지 사명 감당 하길 원합니다. 지난번 보내주신 옷들은 일부 현지 교회의 사역자에게도 전달해 드렸습니다. 하트교회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기도해 주시고 내년에는 우리 캄보디아로 여름에 아웃리치를 한 번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치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한 번 해봅니다. 네 오늘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주일입니다. 부활은 완전한 죽음을 전제로 하죠. 완전한 죽음이 있기 때문에 주님의 완전한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 지시고 죽으심으로 그 죽음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부활하셨다는 것은 완전히 죽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우리 믿는 다면은 여러분이 새롭고 의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죄로 가득했던 우리들의 옛사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옛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그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또 옛사람으로 살기가 고통스러워서 옛사람을 죽이려고 부단히 애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옛사람을 죽일 수 없다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옛사람을 죽일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죽이려는 노력을 멈추고 예수와 함께 내가 죽었고 예수와 함께 나의 죄도 죽었고 그래서 나는 완전히 부활한 자이구나 그 믿음을 오늘 회복하고 찬양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의롭고 흠없고 거룩합니다. 그러한 고백은 바로 나는 부활한 자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 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리죠. 너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를 알면서도 너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라고 할 수 있느냐 너는 위선자야 그런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그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 우리는 도피하든지 아니면 열심히 그 목소리 또 그 목소리의 근원을 죽이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노력은 무용지물이고 더 악화됩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는 부활의 고백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죽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고백입니다. 죽이려고 노력하지 말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라는 안식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새로운 새 생명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믿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을 여러분의 부활로 믿으십시요. 그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또한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유월절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유월절이 있고 부활절이 있죠. 유월절이 있고 유월절을 기점으로 무교절이 일주일간 카운트 됩니다. 그런데 유월절이 있고 하루가 지나고 그 다음에 초실절이 있는데 그 초실절이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이자 부활절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 바로 새로운 시작이다 말할 수 있지만 이 부활은 완전한 죽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시작은 유월절이 바로 새로운 시작이다 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우리들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사흘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유월절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오랜 노예 생활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빠져나온 절기 입니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주지 않았죠. 보내주지 않자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장자 첫째의 아들을 모두 죽이는 그 재앙을 이집트 전역에 보내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들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전달이 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린양을 죽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바릅니다. 그것이 십자가 모양이죠.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바르는게 피를 바른 집은 온 애굽을 덮었던 장자의 죽음의 재앙이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예요. 그래서 넘어가다라는 뜻을 가진 유월이라는 뜻이 바로 넘어가다라는 뜻입니다. 재앙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의지하는 자들은 죽음의 재앙이 넘어가리라 믿습니다. 히브리어로 패사흐가 유월절입니다. 그 패사흐라는 맨 마지막 단어가 헤트라고 해서 울타리라는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을 믿는 그 믿음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이 여러분의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삼키려는 모든 재앙이 멈추게 될 것입니다. 이 유월절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게 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되신 것이 바로 유월절 때이죠. 구약의 유월절은 장차 올 하나님의 참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한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내기 위한 그림자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유월절의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에 첫 열매를 드리는 그 초실절에 부활하셔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의 연합된 부활을 우리에게 가져오셨습니다. 애굽에서 장자의 재앙이 애굽을 덮치기 전 날이였어요. 유월절 전 날 이야기 입니다.
출애굽기 12장 1-2절
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2절에 보면 이 달을 모든 달의 시작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유월절이 있는 이 달을. 저는 이 예언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월절 절기가 새로운 시작임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이 유월절을 맞는 이 시간 이 유월절의 믿음을 다시금 붙잡고 회복한다면 이 말씀처럼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시작이 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희년이 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잠이 안와서 너무 일찍 깼어요. 너무 일찍 깨서 잠이 오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 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희년을 선포하라 이 교회에 모든 가정 가운데 모든 성도들 가운데 희년이 선포될지어다 양각 나팔이 불릴지어다 그런 말씀을 주셔서 제가 너무 설레서 아침부터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정말 믿습니다. 저를 일찍 깨우시고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믿습니다. 희년이 시작 될 것입니다.
이 유월절은 새로운 시작을 우리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달력이 두개가 있는데요, 하나는 영적인 달력이고 하나는 일반 달력입니다. 이 영적인 달력은 미산월 즉 유월절 달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반 달력은 구월부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첫 해가 구월에 시작을 해요. 로시(beginning) 하샤나(the year) 첫 로시하사냐 첫 해의 시작 The beginning of the year 로시 하샤나라고 해서 구월에 시작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은 우리와 다른 달력 체계를 가지고 구월에 새해 시작을 맞고 있는 것이죠. 현대 유대인들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 방금 읽은 바데로 새해의 시작을 하나님은 유월절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죠. 이 구절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새 날의 시작은 바로 유월절이다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월절은 부활절과 지금 하나의 연결된 개념입니다. 4월에 눈에 보이는 이 유월절을 진실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절기 자체를 하나님이 새로운 시작으로 말씀하시는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죽으신 예수님의 그 죽음과 부활을 믿으면 그때 여러분들의 죽음의 재앙이 넘어가게 되고 새로운 시작의 구원이 온다라는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유월절이 중요한 것은 아니죠. 유월절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여러분의 모든 죄를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유월절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력을 따라 교회 나와서 이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지키는 것이 진실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나의 모든 죄가 사함받고 내가 연합하여 부활한 자가 되었다는 이 믿음을 오늘 이 시간 다시금 갖고 붙든다면 하나님이 그 달이 새로운 시작이 될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 가정에 자녀 가운데 새로운 희년이 선포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예요. 유월절의 어린양을 잡았습니다. 장자의 재앙이 온다고 했고 유월절에 잡아서 그 피를 바르면 재앙이 닥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에 어린양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넉넉히 잡았습니다.
출애굽기 12장 4절
4.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양을 잡는데 그 잡은 것에 비하여 식구가 작으면 이웃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허투루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이 기록을 보면 식구 수가 적으면 적었지 중요한 것은 항상 잡은 양은 넉넉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수요보다 언제나 크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정의 문제보다 언제나 크십니다. 여러분의 문제가 아무리 어려운 문제일 지라도 우리의 어려움보다 예수님은 언제나 위대합니다. 그것을 말합니다. 잡은 양은 항상 넉넉했다라는 것이예요.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 문제를 바라보지 마시고 넉넉하게 죽임당하시고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쫄지 마시고 떨지 마시고 형언할 수 없는 크시고 위대하신 예수님이 바로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권능은 강하시고 그 사랑은 한이 없습니다. 절대로 죽임 당한 양이 가족에 비해서 그 문제에 비해서 우리의 삶에 여러가지 필요해 비해서 적은 일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예요. 언제나 식구들이 숫자가 적었을 뿐이죠. 그래서 이웃을 불러야만 했습니다. 내 삶이 내 가정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러한 위축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약속합니다. 이웃을 불러야 할 것이다. 여러분의 삶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말을 잘 못하던 아이가 위대한 달변가와 연설가와 정치가와 영향력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을 많이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시는 위대한 능력이 있는 분이세요. 차고 넘치게 하시는 것이예요. 지금 뭔가가 부족하고 어려운 문제 같지만 돌이켜 하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가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실 거예요. 차고 넘칠 것이다. 차고 넘칠 것이다. 이웃을 불러야 할 것이다. 너의 자녀에 의해서 열방이 변화 될 것이다. 너의 삶을 통해 너의 가정을 통해 이웃이 배불리 먹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오늘 아침에 주신 말씀입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가리라. 흘러 갈 것입니다. 지금 그런거 아닌거 같이 느껴질 줄 모르지만 이미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전도할 때에도 예수님이 너무나도 크신 분이심을 믿으세요. 직장에 가서도 예수님이 너무나도 크신 분이심을 믿으세요. 예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심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예요. 우리는 삶의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자꾸만 접하면서 주눅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위대하고 크신 주님의 아름다움 넉넉히 잡히신 피흘리신 주님을 바라보라. 여러분 대신 죽으신 예수님은 정말 위대하신 하나님이시고 사람이십니다. 여러분의 문제보다 더 큰 해결책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기도 전에 해결책과 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이 쫓았죠. 음식을 살 곳이 없었습니다. 무리는 오천명이 넘었습니다. 가진것은 보리떡 다섯개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질문을 합니다. 요점은 뭐냐면 가지고 있는 것의 부족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먹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천명이나 있습니다. 문제는 너무 큽니다.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 적습니다. 문제는 너무나 확대 되어 보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것이예요. 하지만 주님은 바로 그 순간에도 주님께서 그 작은 것에 안수하시자 아무리 초라한 것이라도 주님이 안수하시면 베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손이 닿으면 망가지고 흩어지죠. 하지만 주님의 손이 닿으면 베가가 되는 거예요. 주님이 안수하시자 먹고 남은 음식을 열 두 광주리를 채우고 가득 남겼어요. 오천명 넘는 사람보다 더 큰 능력이 있으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문제들이 왔을 때 쫄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봤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오천명을 다 먹이기도 전에 먼저 뭐라고 하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감사하고 시작하시는 거예요. 오천명을 먹이기 전에 오병이어를 주님이 받으시고 제일 처음 하신 것이 다 먹이고 어 다 먹었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니고 이미 이 모든 문제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감사합니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고 그렇게 하셨다라는 것이예요. 밤 새 고기를 못잡던 어부들이 있었습니다. 베테랑이죠. 예수님은 어부도 아닌데..어부들은 베테랑이였습니다. 수십년씩 잔 뼈가 굵은 어부들이죠. 어부들은 밤 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예수님이 그 어부를 축복하시자, 예수님은 본성상 넉넉하게 넘치게 축복하시는 분이세요. 예수님에 대한 오해를 이 시간 푸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본성상 넉넉하게 축복하시는 분이세요. 어부들을 축복하시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를 잡았고 그래서 본문에 보면 혼자 끌수가 없어서 이웃을 또 불렀어요. 주님은 그러신 분이예요. 이웃을 불러야만 하는 풍성함과 넉넉함과 흘려보냄이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자녀가운데 역사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실 때에 여러분만을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항상 이웃을 불러야만 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는 것은 여러분을 축복하셔서 세상이 축복을 받도록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고인 삶이 아니라 흐르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항상 흘러 내리시는 축복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수요보다 하나님의 공급이 더 크십니다. 하나님은 남의 복을 빼앗아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남이 복을 받았다고 해서 내 복이 줄어드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나와 이웃과 모든 사람들을 모두 축복하고도 축복할 것이 남아 계신 분입니다. 그러니 시기하지 마십시요. 마음을 좁게 만들지 마십시요. 인색하지 마십시요. 그 수문 뒤에 수백만 톤의 물이 가득한데 사람들은 저 작은 구멍 하나를 내고 시기와 질투와 인색한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라. 마음을 넓게 하고 수문을 여십시요. 수백만 톤의 생명의 축복이 이미 왔습니다. 이미 왔습니다. 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수문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넉넉하심을 바라보고 흘려 보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좁아진 것이죠. 다른 이들에게 복이 되는 그러한 삶을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색하고 가난한 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아무리 축복하셔도 언제나 부족하다고 합니다. 휴가를 즐기는 동안에도 사소한 것 하나를 불평하죠. 불평이 습관 된 가난한 영을 가진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불평할 거리를 찾습니다. 천국이 왜 이렇게 심하게 밝아 이렇게 불평이 습관이 된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불평거리를 찾는 다는 것이죠. 천사의 찬양들이 너무 시끄러워 이렇다는 것입니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제 얘기 하는 거예요 ^^. 마음이 좁고 불평이 습관 된 그러한 사람들 곁에는 사람들이 잘 가려고 하지 않죠. 하지만, 마음이 넉넉하고 천국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곁에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낍니다. 오늘 부활 주일을 맞으며 우리의 영혼이 어떤 순간에도 밝음을 보고 또 항상 감사할 제목을 찾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또한 다른 이들을 이웃을 불러야만 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을 축복하는 그러한 인생이 되기를 올려드리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출애굽기 12장 5절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잡아야 되는 양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 양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흠이 없었습니다. 그 분이 세상 죄를 지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 분 안에서 흠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흠이 없었고 오직 흠이 있는 순간이 단 한순간 있었어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 지셨을 때 그 때 단 한순간 빼고는 주님은 흠이없고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점하나 없던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되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흠없는 자 만들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일년 된 수컷은 아주 귀여운 어린 양입니다. 왜 하나님은 다 자란 양을 잡으라고 하지 않으셨을까요? 일 년 된 수컷 어린 양을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 양을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합니다. 유월절에 어린 양을 잡죠. 그 어린 양을 아무때나 가서 바로 잡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째에 한 양을 선택을 합니다. 흠 없는 양을 그래서 오일 동안 가족들과 같이 지내게 합니다. 그때는 모든 나잇대가 같이 살기 때문에 어린아이들 그리고 그 어린 아이들이 일 년된 수컷 양을 얼마나 이쁘게 돌봤을까요. 오일 동안 일년 된 수컷양과 가족들은 하나가 되는 거예요. 아무런 관계가 없던 가족들과 오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서로 사랑하고 그 어린 양을 돌보면서 내 가족같은 그러한 느낌이 드는 시간들 오 일을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죽이냐면 오 일이 지나고 십사일째 그 어린양을 잡아 죽입니다. 고통스럽겠죠. 여러분 반려견 기르시는 분 많죠. 정말 가족 같잖아요~함께 지내다가 내 손으로 그 양을 죽여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중간에 오 일동안은 그 어린양은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어주신 그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 아들인지 우리들에게 알게 하시기 위해서 였어요. 이 어린 양이 가족들과 지내면서 가족들 특히 아이들이 양을 정말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 일동안 친밀하게 가족들과 지내고 난 뒤에 오 일 후에 그 양을 죽였습니다. 아이들 뿐만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슴에 눈물을 품고 그 양을 죽음의 장소로 데리고 가야 했던 것이죠.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보내주시고 함께 지내도록 했어요. 유월절의 어린 양을 오 일동안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했던 것처럼 똑같은 구도로 예수님이 오셔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오 일 전부터 오 일 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것이예요. 똑같은 구도로 되어 있어요. 우리는 예수님의 영광과 사랑을 보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오 일 전에 성전에 계시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 때부터 예수님은 많은 말씀을 하시고 자신의 영광을 보여 주시고 그 분의 사랑을 보여 주시죠. 우리가 그의 영광과 사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 주님이시고, 아무도 주와 같은 분이 없다라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오 일간 함께 지내게 하신 것은 그 분이 아무런 흠이 없는 분이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죠. 오 일동안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한 이유는 첫번째는 하나님이 이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에게 내어주신 그 양이 두번째는 이 양이 흠이 없다라는 것을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흠있는 양을 받치게 되면 제사의 효력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오 일동안 같이 지내게 하면서 같이 지내다보면 그 양의 모든 오점들이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 일동안 지내면서 정말 이 양이 건강하고 아무런 흠이 없고 건강하다라는 것을 검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양을 드리게 되는 것이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오 일 전에도 그렇습니다. 성전에 계십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검사를 받으셨어요. 흠이 있는 양인지 아닌지 그 예수님이라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많은 유대인들이 검사를 한 것이예요. 오 일 동안 그 가족들이 어린 양을 검사했던 것처럼.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검사하는 줄을 몰랐겠죠. 하지만, 그 구약에 쓰여진 것처럼 오 일 동안 그 어린 양을 자기들이 하나님의 어린 양을 검사하고 있었던 것이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만약, 양이 열병 등 병이 있으면 가족들과 같이 있는 오 일 동안 그것이 들어나게 되어있습니다. 뭘 먹이고 할 때 이빨에 병이 있거나 하면 양이 먹지를 못하죠. 그러면 이 양은 하자가 있는 양이기에 그 양을 받칠 수가 없죠. 오 일 동안 이 양과 지내면서 그 양을 검증해 나가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오 일 동안 검증했던 것입니다. 부모도 알고 자녀도 다 알게 되죠. 오 일동안 그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오 일전에 성전에 계시면서 이렇게 검사를 받으셨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어떤 권세로 이렇게 하느냐? 예수님이 답하셨습니다. 자기의 권세에 대해서 물을 때 자기 권세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고 세례요한의 권세에 대해서 질문을 다시 하죠. 세례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되물으십니다. 세례요한의 그 세례가 하늘로 부터냐 사람에게서냐? 사람들은 웅성되며 의논했습니다. 세례요한의 그 세례가 사람으로부터 왔다라고 하면 세례요한의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돌에 맞을까봐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례요한의 세례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라고 하면 바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대우 해야만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딜레마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그들의 철저한 검증의 질문에도 하늘의 지혜로 그 검증을 정확하게 실수없이 그 검증을 통과하셨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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