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제거하고, 자유케 하라
요한복음 11장 39-40절 │하트교회 차명권 목사님
2022. 2. 20 주일예배
요한복음 11장 39-40절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성령으로 함께하사 주를 더욱 알게 하시고 주 안에서 생명을 얻고 생명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이 하늘로 부터 다시 강림 하실 것이니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복음을 전하는 새 언약의 사역자로 살아가야 한다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구원은 몸의 구원 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구원받았죠.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주시는 몸의 구원 그 구원을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에게 주시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셔서 우리를 공중으로 끌어 올릴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이미 죽은 신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으로 살아 남아 있는 우리는 강림하시는 주를 따라 들려 올라 갈 것입니다. 교회는 들려 올라가고 이 땅은 칠년 대 환란이 있을 것이고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천년 왕국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봐도 2장 3장 후에는 교회라는 명칭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들려 올라가고 이 땅에 없기 때문이죠.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믿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도 주의 강림하심을 믿지 않고 성도들이 들려 올라감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조롱하기 까지 합니다.
베드로 후서 3장 3-4절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그 때와 그 시를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이 언제 강림 하실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주님이 오신다 오신다 말은 했지만 조상들이 죽은 이후로 지금까지 무엇이 달라진 것이 있느냐 주님이 오시는 것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오실 것에 대한 그러한 말씀을 조롱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죽고 살아 졌는데 주께서 강림하신 다는 말은 허구이며 또 강림 하신다는 그 약속을 조롱합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의 조롱이 있습니다. 재림을 조롱하고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것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 이미 죽은 자들과 함께 그들이 다시 영광의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나는데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신다 구름 속으로 끌어 올리다 이것이 하르파조라는 헬라어 입니다. 끌어 들려 올라가다.
그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7년 환란 전에 공중으로 끌어 올려질 것이고 주를 보게 될 것이고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끌어 올려져서 7년 대 환란을 겪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 때에도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것을 조롱하던 아이들이 큰 화를 당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기록에 보면 아이들이 엘리사를 놀리죠.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해서 엘리사가 화가 나가지고 아이들을 죽였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려서 화를 당한 것이 아니라 올라가라 올라가라 이렇게 말하면서 장차 올 하늘로 올라감을 조롱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2장 23-24절
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우리는 주의 강림하심을 볼 수 있는 세대이고 그 정확한 때를 알수는 없지만 가까이 왔습니다. 방금 읽은 그 엘리사에게 대머리여 올라가라 한 것은 사실은 반어적으로 아이들이 조롱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조롱이 있죠. 정말로 주의 강림하심이 있을 것이냐 정말로 교회가 주님이 강림하실 때 들려 올라갈 것이냐 7년 대환란이 올 때 교회도 안전하지 않다 그 환란을 겪을 것이다 이렇게 조롱하지만 주님은 약속 하십니다. 주님이 강림하실 때 교회는 공중으로 끌어 올려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정확한 때를 알 수 없지만 가까이 왔다라는 것이예요. 성경은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과 같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베드로 후서 3장 8절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인간에게는 천년인 시간이지만 하나님은 천년을 천년을 천년으로 보실 때가 있고 하루로 다루실 수 있는 분 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기록한 그러한 구절들이 있고 또 인간의 크로스적인 시간으로 기록한 부분들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와 천년 사이의 그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성경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천 년을 하루로 계산해서 주님이 오신 이 후에 이천년이 지난 시간들 속에 우리를 일르켜서 하늘로 들려 올리시고 또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호세아 6장 2절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신다는 말씀은 주의 강림 하심과 성도의 들려 올라감의 비유 입니다. 예수님 이후 이천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우리는 셋째 날을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는 이틀이 지고 사흘째가 된것이죠. 곧 이천년 이후 이제 삼천년 대로 가고 있는 그 사흘의 시간 지금 이 세대에 주님이 강림하실 것이고 우리는 들려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표적의 책이죠. 첫 표적은 무슨 표적입니까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입니다. 왜 요한복음은 혼인잔치로 시작할까요
요한복음 2장 1절
1. 사흘째 되던 날 갈리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사흘째 날에 혼인잔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흘째 날에 우리가 지금 있습니다.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혼인잔치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들려 올라가는 이후에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도 사마리아 여인이 나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방여인이였죠. 근데 재미있는 것은 죄 많은 사마리아 여인 이방인 그 전장에 보면 주님께 질문했던 사람은 아주 신학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뛰어난 사람이였습니다. 유대인이자 최고 의결 사법기관인 니고데모가 찾아 왔었습니다. 이 두가지를 의도적으로 성령께서 합쳐서 장을 구성하신 거예요. 대비 되겠금. 그 니고데모에게는 주님은 자신이 메시아 이심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 잘난 니고데모에게는 하지만 이방여인이였고 남편이 이 전에 다섯에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간음 상태에 있는 그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 이심을 드러냈다는 것이예요.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게 되자 어떻게 했습니까? 최초의 전도자가 됩니다. 물동이를 던져두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챙피하니까 자기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자기의 과거를 다 알고 있는 마을로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챙피하겠습니까 그들을 피해서 사람들이 물을 깃지 않는 정오에 물을 뜨러 온 이 여인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만나고 나서 다시 자기에게 침을 뱉고 자기에게 조롱하는 그 마을로 돌아가서 메시아를 전했다는 것이예요. 자기가 보이지 않았다라는 것이예요. 주님이 그의 삶 속에 들어갔던 것이죠. 자신을 조롱하고 침 뱉던 마을로 돌아가 자신이 만난 메시아를 전했습니다. 나를 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메시아를 전했습니다. 마을로 돌아간 사마리아 여인의 삶이 얼마나 대단히 많이 변했겠어요 금방 메시아를 만나고 자기 눈이 뜨여지고 생명이 거듭났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마리아 여인이 얼마나 그의 삶이 거룩해지고 많이 삶이 변했겠어요. 그죠? 우리는 물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성화의 삶을 살지만 또 그것으로 인해서 전도 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전도는 사실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예요. 우리가 많은 변화와 많은 성숙이 없더라도 내가 만난 메시아를 전하면 하나님이 그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것이예요. 사마리아 여인의 삶이 그렇게 대단하게 변한 것은 아니였지만 사마리아 여인이 자신이 만난 메시아를 전했을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시니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그 삶을 봤다라면 아무도 믿지 않았겠죠. 하지만 여인은 내가 만난 메시아를 전했고 그 메신저가 아니라 그 메세지가 그 사람을 변화 시켰던 거예요. 여러분이 전도를 할 때도 사단이 여러분들이 전도 못하게 하는 브레이크가 그 중에 하나죠. 너가 그렇게 살면서 무슨 너가 전도를 하면 전도 되겠냐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같은 참소와 유혹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물론 예수를 만나서 점차 변화 되겠지만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고 그 다음에 거듭나고 하는 하나님의 일은 메세지를 통해서 된다는 것이예요. 본질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 사마리아 여인을 통한 예수가 누구신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초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시고 바로 떠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시고 이틀을 더 유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이틀의 시간을 보내고 몇째날에 떠나세요? 셋째날에 갈릴리 이스라엘로 다시 떠나게 되는 거예요.
요한복음 4장 42-43절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셋째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예요. 이틀동안 이방인들과 있었죠. 그리고 이틀이 지나고 셋째날에 갈릴리 이스라엘로 다시 가신 것이예요. 예수님은 이틀간 이방인들과 머무셨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에 속한 자들이죠. 이스라엘의 관계성 속에서 예수님이 죽으신 이후 지난 이천년 동안 중요한 초점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복음은 지난 이틀동안 즉 이천년동안 이방인들에게 전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이방인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이천년이 지난 후죠. 지금은 물론 이방인들에 대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는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천년이 지났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사흘째 즉 지금 이천년이 지난 이후 어디로 가셨을까요? 이틀 후 갈릴리로 가셨던 것처럼 이스라엘로 복음이 흘러가도록 강력하게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메시아를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이틀 후 이스라엘에 초점을 맞추시는 것을 시작하시는 것이죠. 우리는 이것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다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주님이 강림 하실 때가 아주 가까이 왔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강림하심과 관련해서 이스라엘에 두 큰 흐름이 병행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많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깨어나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되는 복음의 역사가 강력하게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셋째날에 둘째는 반대의 흐름이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라는 것이예요. 아직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고 있는 유대인들은 지금의 성전산에 제 3성전을 지으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 메시아를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메시아 예수그리스도는 오셨죠. 하지만 믿지 않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성전을 쌓고 성전을 짓고 아직 오지 않은 메시아를 기다리고자 하는 것이죠.
이 솔로몬 성전이 제일 첫번째 성전이죠. 솔로몬 성전이 BC586년에 무너집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무너집니다. 그 이후에 제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이(BC516세워짐) - AD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서 무너집니다. 헤롯 성전은 있었지만 헤롯 성전은 독립된 성전이 아니라 두번째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을 더 아름답게 보강한 것입니다. 헤롯 성전은 제2 성전으로 보는 것이죠. 그것은 AD 70년에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무너집니다. 그 이후에 성전이 없어진 것이죠. 이스라엘 민족이 그 이후에 제사를 못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쫒겨나서 전 세계로 흩어 졌습니다. 우리나라는 100년도 안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일제의 압제에서 그 수십년 동안 언어를 다 잃어 버릴 뻔 했죠.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수천년 동안 세계에 흩어졌지만 그 언어가 사라지지 않고 그 언어를 지켜왔던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고 이스라엘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그 민족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아직도 율법에 갇혀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을 세계 가장 뛰어난 세속적인 나라로 민속적 이스라엘로 높히 올려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성전은 그 때 이후로 없어졌고 다시 그 성전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것이 지금 이스라엘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제3 성전을 재건 하려고 하는 움직임 입니다. 그들은 전 세계로 AD70년 이후로 흩어졌고 그 이스라엘 민족은 1948년 5월 4일 연한 잎사귀같이 나라를 세우고 무엇보다도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제3 성전을 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였던 사내들인 공에 그것이 다시 소집이 되었습니다. 2000년 만에 다시 소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3성전을 세우기 위해서 제3성전 위원회가 세워지고 성전에 필요한 모든 기구들이 거의 다 만들어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제3성전이 세워 졌을때 제사를 온전히 드리기 위해서 유월절 제사 의식을 재현하는 그러한 식을 계속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로 된 모든 성전을 무너트리고 온전한 성전으로 부활하셨죠. 우리를 성전으로 만드셨습니다. 돌로 된 제3성전은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들이 아직 오시지 않은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만들 그 제3 성전 그것이 세워 지겠지만 그 제3성전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가 통치 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내들인과 예수를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이 세우고자 하는 그 제3성전과 함께 적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고 그 제3 성전은 더욱 처참하게 무너지고 교회는 하늘로 들려올라가고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셋째날에 일어날 일들이고 우리 세대는 셋째날을 살며 주님의 강림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 셋째날에 놀라운 복음이 세계 곧곧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도 더욱 전해질 것이라는 것이죠.
요한복음 11장5-6절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어가는 소식을 들으시고 몇일을 더 머무셨어요?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소식을 듣고 사흘째에 죽은 자를 일으키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틀을 왜 더 머무셨냐. 가나의 혼인 잔치에도 사흘째에 이렇게 되있었죠. 그리고 사마리아 마을에서도 이틀을 유하시고 사흘째에 또 나사로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소식을 듣고 이틀을 더 유하시고 사흘째에 유다로 가자 말씀하신 것입니다. 소식을 듣고 사흘째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유다로 가셨습니다.
셋째날인 지금의 세대에 일어난 일들과 우리 믿는 자들에게 당부하시는 은혜의 복음의 명령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틀을 더 유하시고 나사로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와 그리고 나사로의 가족은 철치월드예요.
믿는 교회의 세계를 말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는 예수님이 왜 이틀을 더 유하셨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3-24절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오셔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 하셨습니다. 25절은 이미 죽은 자들을 향한 말씀이죠.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미 죽은 자들을 향한 주님의 약속 입니다. 살아날 것이다. 주님이 강림 하실 때 먼저 잠자는 자들 죽은 신자들이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죠. 그리고 26절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 세대에 대한 말씀 입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강림 하실 때 살아 남아서 하늘로 들려 올라갈 세대에 대한 주님의 약속 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시는 말씀과 함께 이제 뒤에 어떤 말씀을 하시냐면 돌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돌을 제거하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비통하게 여기셨어요. 왜냐 돌이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를 우리 인간을 죽지 않게 만들었는데 나사로가 첫사람 아담의 죄를 갖고 태어나서 모든 인류가 다 죽게 되었죠. 나사로도 마찬가지로 죽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맞지 않게 이 죄로 인하여 죽어 있는 이 나사로의 모습 비통하게 여기셨죠. 그리고 또 왜 비통하게 여기셨냐 돌이 그 무덤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8절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죽어서 시체가 되어있는 나사로의 무덤을 무엇이 막고 있었습니까? 돌 입니다. 돌이 막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돌은 헬라어로 리토스 입니다. 거대한 바위를 뜻하는 패트라가 아니라 리토스 라는 단어 입니다. 나사로의 무덤을 막고 있던 이 리토스가 사용되는 또 다른 구절을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7절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여기서도 돌에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 돌이 리토스라는 단어예요. 십계명 율법이 새겨진 돌을 리토스로 표기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틀을 더 유하시고 오셨을 때에 나사로에게 오셨을 때에 무엇이 막고 있었죠. 리토스가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돌이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율법이 이스라엘을 막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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