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와 주님의 사랑 레위기 7장 30-31절 하트교회 주일예배 차명권 목사님
요제와 주님의 사랑
레위기 7장 30-31절
하트교회 주일예배
차명권 목사님
레위기 7장 30-31절
30. 여호와의 화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31.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기도>
주님의 높고 크신 사랑을 바라보는 예배 되시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높임 받으시는 축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주일 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식은 무엇인가?
우리도 밥을 먹듯이 그리고 밥을 먹고 힘을 얻는 것처럼 하나님도 뭔가를 드신다고 가정을 했을 때 하나님의 양식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무엇을 흡족하게 받으시고 먹으심으로 기뻐하실까 질문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레위기 3장 3절을 보겠습니다.
레위기 3장 3절
3. 그는 또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우리가 지금 번제와 화목제 등을 보고 있는데 여기서 드려지고 태워지는 제물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모든 제물이 예수 입니다. 그런데 그 드려지는 것중에 최고가 있어요. best가 무엇이냐 그것은 '기름' 입니다. 화목제에서 짐승의 기름을 따로 떼어 내어서 화제 즉 불에 태워 드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기름은
기름 = 헤레브 =riches, best
기름이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헤레브는 부유함, 최고라는 뜻입니다. 기름을 태워 드린다는 것은 최고의 것을 태워 드린다는 것이죠.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가지고 계신 가장 최고의 것을 드린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 간직하고 계신 최고의 것이 바로 예수님 입니다. 화목제에서 내장을 자르고 그 내장의 기름을 발라서 태워 드린다고 했죠. 내장의 기름입니다. 내장의 기름이라는 것은 내적인 부유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적인 탁월함과 아름다움 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경우에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감명을 주기위해서 외적인 것을 자꾸만 좋게 만들어서 감명을 주려고 하고 설득을 주려고 하고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하죠. 하지만 그 사람 안에는 어떤 마음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으로까지 모든 면에서 부유하시고 탁월하시고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향해서 말씀 하십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원문으로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영어로는 in whom I am well Pleased ( 그 안에 있는 것으로 내가 참으로 기뻐하는 자) 그 자가 어떤 자냐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그 아들을 보시고 그 안에 있는 것으로 내가 만족하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은 내면을 보시는 분이시죠. 하나님을 속일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안의 있는 것이 얼마나 탁월하고 아름답고 풍성하고 부유한지를 우리는 느낄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도 기뻐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 있는 것으로 기뻐하셨다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이것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 분 안에 있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하고 더 설교 할 수록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예수님을 최고의 분으로 여기고 우리가 설교하고 나누고 묵상할 때 하나님은 가장 충만하게 기뻐하신 다는 것을 우리는 배울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질 못한다 성경은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여러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을 했는지에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 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을 했는지 그 믿음 믿고 내가 내놓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그 믿음은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지에 대한 믿음이예요. 예수님이 하신 일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에 대한 믿음입니다. 공의를 만족시키신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높고 위대하고 놀라운 것인지 확실한 것인지에 대한 믿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정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의 자라는 믿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을 이야기 하는 것 또 예수님을 만나는 것 이것이 예배입니다.
레위기 3장 4-5절
4.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낼 것이요
5.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의 번제물 위에서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기름을 불에 태워 드려야 했습니다. 그 기름의 위치는 바로 번제물 위에서 그 기름을 태워야 했습니다. 즉, 화목제의 그 기름은 번제물 조각들 위에 놓여져서 태워졌습니다. 번제물의 조각은 머리와 내장과 정강이라고 했습니다. 머리와 내장과 정강이의 뜻은 죄를 알지 못하시고 죄가 없으시고 죄를 짓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조각내어 번제물로 태웠고 그 위에 기름을 태웠던 것입니다. 아래에 있는 그 번제는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 입니다. 번제가 태워질 때에 그리스도의 의가 여러분에게 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여러분이 의로운 행위를 해서 받는 의로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행위로 내 놓는 의가 아닙니다. 신약에서는 절대로, 그것은 저주를 받을 지어다 말한 바울이 갈라디아서 1장에서 말한 다른 복음에 속한 의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여러분의 의로움은 바로 예수님에게서 받는 의로움 입니다. 선물로 받는 의로움 입니다. 믿음으로 받는 전가 받는 의 입니다. 그 의 만이 여러분을 확신으로 이끌수가 있습니다. 구원을 줍니다. 그 의 만이 믿음을 더하게 합니다.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번제가 태워질 때마다 즉 예수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셨다라고 우리가 믿을 때마다 그리스도의 의가 여러분에게 전가 되는 것입니다. 은혜와 의를 넘치게 받는 자가 됩니다. 번제와 화목제 등을 드리는 그 제단 있죠. 그 제단은 하나님의 요구가 만족 된 자리 입니다. 하나님의 요구 만족 된 자리. 우리에게 의를 요구하는 하나님의 그 요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족이 된 자리가 바로 그 제단 입니다. 그 제단 위에 그 번제 물이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번제물 위에 기름이 올라가서 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단 위에 여러분이 올라가서 이것 저것 열심을 가지고 자기 의를 태워보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교도 적인 것입니다.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또 하나님데 대한 확신에서 우리를 더욱 더 두려움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제단에서 내려 오시길 바랍니다. 자기가 하려는 것에서 내려 오세요.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이 태워 지신 것에 감사하고 그 분과 그 분이 주신 것의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즐거워 하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자기 힘으로 애써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제단은 하나님의 양식을 드리는 자리인데 하나님의 그 양식은 여러분의 애씀이 아니라 바로 번제물 이라는 것이예요. 하나님의 양식은 공의를 만족시킨 예수님 입니다. 여러분이 공의를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거기서 모든 것을 다 태워 드려도 그것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드려지는 그 번제물 참 된 번제물은 우리를 향한 그 공의를 만족 시키신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양식이 되고 우리에게 축복이 된다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신 그 순종 안에서 하나님은 진정한 만족을 발견 하십니다. 여러분의 순종 안에서 하나님은 진정한 만족을 발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아름답게 순종 하셨습니까? 사람이 할 수 없는 순종 이였습니다. 성경에서 순종 이라는 것을 발견하면 너무나 무겁죠. 우리는 순간 적으로 또 자연스럽게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했지?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지? 이렇게 흘러가버려요...자연스러운 육적인 죄성 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렇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의 순종으로 끌고 갑니다. 예수님의 순종 앞으로 데려가죠. 그 분이 얼마나 놀라운 순종을 하셨는가 그것을 바라 볼 때에 우리의 불완전한 순종이 씻겨 나가는 거예요. 예수님의 순종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정도로 순종 하셨습니다. 우리가 순종하다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예수님의 그 순종을 바로 너희의 순종으로 받고 믿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만히 묵상하면서 여러분 자신의 순종을 헤아리다 보면 그 끝은 절망 뿐입니다. 여러분의 순종을 묵상하다 그 끝에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만족스럽고 하다면 그것은 잘 못 된 것이죠. 우리의 순종은 그 끝이 절망 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순종은 주님께 충분하고 완전한 기쁨과 만족이 된다는 것이죠. 우리가 그 순종 안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순종이 우리의 순종으로 전가된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그 순종을 감사하고 그것을 여러분의 순종으로 전가 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묵상하다 보면 여러분은 그 영혼을 묶고 있던 족쇠에서 풀려나고 은총과 축복과 능력과 지혜의 구원이 흐르게 됩니다.
요한복음 10장 17절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했죠? 그 이유가 뭐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린다.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시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을 아버지께서는 기뻐하시고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죠. 아들인거 그 자체 만으로도 하나님은 충분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만족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당연하지만 성경은 표현을 어떻게 주로 하냐면은 바로 그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에 사랑한다라고 자꾸 표현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31절
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예수님이 아버지를 완전하게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아버지 성부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가 명하신 모든 것을 명하신 대로 행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함이다 일어나서 여기를 떠나자. 세상이 알게 하시려고 주님은 일어나셨던 것입니다. 공생애의 시간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일하시는 이유도 바로 예수님이 친히 하셨음을 세상이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아들의 순종 안에서 만족을 느끼시고 행복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기쁨을 발견 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기쁨과 즐거움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여러분에게 전가 된 것이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쁨과 즐거움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얼마나 즐거움 가운데 계셨습니까? 주님을 즐거워하는 인생을 사셨죠. 그리고 예수님은 무엇 보다도 예수님은 그런 생각을 놓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께 받아들여 지고 있다라는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자 그것은 변함이 없다 라는 것. 하나님께 예수님이 온전히 사랑과 기쁨으로 받아 들여진다라는 그 마음을 갖으셨죠. 그것도 여러분에게 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보십니다. 여러분이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라고 고백 할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 되었음을 믿고 받아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이 말은 놀라운 것이예요.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는 예수님 밖에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것이 여러분의 것이 아니예요. 예수님을 믿고 속죄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나는 예수님 안에 있는 자라는 믿음과 고백을 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냐 그 전과 후의 차이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바로 예수님의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예수님처럼 보신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나를 기뻐하실까? 나를 얼마나 용납하실까...그것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면 자꾸 여러분을 초점을 맞추면 안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보세요. 하나님이 예수님을 어떻게 아름답게 보시지? 어쩔주를 몰라 하시죠. 그의 아들을 그렇게 여러분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in Christ 안에 담겨 있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두 아들이 나옵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상속 받아 먼 타국에서 방탕한 생활 속에서 모두 탕진했습니다. 작은 아들의 비참함은 돼지가 먹는 쥐염 열매도 먹지 못하는 상황도 물론 비참하지만 작은 아들의 가장 비참한 것은 전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거예요. 아버지에 대한 오해 입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부유한 분이신지 얼마나 용서와 사랑이 끝이 없으신 분이신지를 작은 아들이 잊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지금도 마을 끝에 나가서 아들이 돌아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변함 없는 아버지 임을 아들이 잊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이 살아나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작은 아들이 살아 나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집에 대한 부유함을 떠올리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7절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버지의 집을 생각했어요 아들이 그런데 아버지의 집은 품꾼까지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곳이 바로 아버지의 집이다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아들의 살아남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곳으로 가야 겠구나. 그것이 회개죠. 돌이키는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집에 돌아 온 이후에 많은 잔치들이 벌어지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신발을 신기고 잔치를 벌리죠. 이 모든 것이 무엇 입니까? 그것을 통해서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오해를 풀어 나가는 것이예요. 아버지의 부유함과 또한 너가 나의 아들이며 나의 모든 것이 너의 것이라는 그러한 진리에 대해서 아들의 믿음이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여전히 궁핍한 영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온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예수를 믿고도 이처럼 고아와 가난의 심령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전히 자기의 능력과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죠. 큰 아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큰 아들의 가장 비참함도 바로 아버지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기 위해서 얼마나 애썼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다 칭찬했을 거예요. 큰 아들을 얼마나 아버지를 섬기기 위해서 애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것이 자기의 것이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큰 아들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9-31절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자기와 영원히 함께 하시고 모든 것을 전가 시켜주신 아버지에 대해서 큰 아들이 알지 못했던 것이예요. 아버지의 옆에서 열심히 아버지를 섬기며 끝 없이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던 큰 아들이였죠. 그런데 아들은 늘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죠. 작은 아들이 돌아 왔을 때 잔치를 베풀어 주는 걸 보면서 나는 아버지 명도 어긴 적도 없고 아버지를 위해서 열심히 여러 해를 섬겼는데 나한테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줘가지고 잔치 한 번 해준적도 없는데 왜 작은 아들은 이렇게 베풀어 주느냐 큰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결코 아버지의 것이 자기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일해서 아버지의 것을 가져오려고 했던 것이죠. 큰 아들의 마음은 사실은 빈곤했으며 부유하지 못했습니다. 큰 아들이 자기 동생을 시기하는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시기하고 비난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무엇입니까? 그 상대방 때문입니까 상대방 때문이 아니고 바로 우리의 마음이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잘 되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실 축복이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부유하심과 경계 없음을 우리가 경계짓죠. 우리가 누군가를 돕거나 내 시간을 내거나 용서하거나 용납하거나 내 생각과 의견을 내려 놓거나 절망을 내 쫒거나 하나님께 예물을 받칠 때에도 우리에겐 어떤 것이 자꾸만 작동하냐면 우리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의 부유함에 대한 믿음이 작동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모든 것이 바로 나의 것이다라는 이 부유한 가운데 있는 자와 그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하나도 주님이 내어 주신 것이 없는 나는 그냥 빈곤한 상태야 라고 하는 사람이 이 모든 것을 대하는 생각과 행위들이 틀리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면 우리의 모든 면이 달라지고 우리의 영혼이 부유해 집니다. 여러분의 모든 영혼이 부유해 지기를 원합니다. 누군가를 축복하는 것 이것이 제게는 지난날의 어려웠던 과제 였습니다. 그런데 들여다 보면 그 상대방과 축복을 해줘야 하는 마땅한 때가 있을 지라도 내가 못했던 것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였어요. 나의 마음이 거지였던 것입니다. 내 마음이 부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 마음이 지옥이였던 것입니다. 누군가를 축복해 줄 수 없는 마음이 아니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내 마음이 부유해지고 내 마음이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구나 내가 아무리 흘려 보내고 내가 아무리 빼앗기고 나에게서 아무리 뭔가가 나가도 끝 없는 하나님의 부유함이 나의 영혼과 나의 삶 가운데 차고 흘러 넘치는 구나라는 아버지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라는 그 믿음 안에서 내 영혼이 부유해 졌을 때에 누군가를 진정으로 축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으로 부유한 자가 축복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가난한 자가 되지 말고 영혼이 부유한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번제이시고 향기로운 기름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물을 더욱 알아가세요. 많은 교회들 가운데서도 서서히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율법적이거나 교회 안에 혼합이 되어 있었습니다. 은혜와 율법이 많이 혼합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니면 완전히 율법적으로 흘러가는 교회들이 대다수 였습니다.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많이 바라봅니다. 많은 설교들로 우리 자신의 어두운 부분들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 그 옛자아의 모습이 우리 자신이고 우리의 운명인 듯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짜 모습은 무엇입니까? 부활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참 나 우리가 예수님을 들어낼 때에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예수님 조차도 성경의 모든 곳에서 예수님 자신을 설명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기독교 영성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더욱 볼 수록 우리는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여러분으로 여기십니다. 얼마나 엄청난 말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볼 때 그리스도처럼 여긴다는 것이예요. 그리스도 안에 여러분의 운명이 있습니다. 그 분이 성취하신 것의 무엇이든 여러분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이런 말을 합니다. 상당히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목사님 아닙니다. 저는 예수님의 모습과 거리가 너무 먼 것 같아요. 여전히 저는 부정적이고 염쇄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있고 나는 여전히 괴로움과 분노가 있고 예수님 처럼 살지 못하고 있다라는 생각 때문에 괴롭습니다. 나는 어디를 봐도 예수와 근접한 구석이 없습니다. 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오늘 분명하게 여러분 아셔야 할 것은 그런 생각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그렇게 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방금처럼 말한 여러분의 생각은 바로 해변의 죽은 애굽 군대와 같습니다. 이미 죽은 군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넜으면서도 애굽 군대가 따라오고 있다고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옛사람이 죽었는데도 그 옛사람의 남은 습관이 내 안에 올라올 때 그것을 참 나로 동일시 하는 이 생각이 바로 홍해를 건넜으면서도 계속해서 애굽 군대가 나를 추격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죄 된 경향성들 생각들을 느낄 때마다 그것들이 여러분들이 아니라고 선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들이 지금의 여러분들에 대한 정의가 아닙니다. 옛자아가 죽었는데도 그 죽은 시체를 여전히 품고 있는 그 생각에 갇혀 있으면 무덤의 범주를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 사람의 의해 정의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이시지만 또한 우리를 대표하여 하나님 우편에 사람으로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 우편에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도 앉아 있지만 사람의 대표로 사람으로 또한 앉아 있다 그 분이 바로 여러분 입니다.
로마서 5장 1절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로움이 하나님과의 화평의 기초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의를 나타내는 그 번제는 우리가 받은 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의가 아니라 받은 의라고 했습니다. 그 위에 샬라밈 즉 샬롬의 복수라고 했죠. 모든면에서의 평화를 나타냅니다. 그 화목제인 기름이 타고 있는 것입니다. 의로움이 없는 화평은 가짜 입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의로움하니까 의롭게 살아야 되나 보다 또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번제가 되시고 선물로 의를 주셨습니다. 나의 단점과 실패와 상처 등 이 모든 것의 휘둘려서 괴로운 시간에 낭비하지 말고 전가 시켜주신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그 의에 서서 그 모든 단점과 실패와 상처들과 화평하시기를 바랍니다. 단점이든 실패든 교만이든 또한 열등 의식이든 이러한 것에 몰두 하는 것은 자기 몰입입니다. 자기에게 몰입해 있는 것이죠. 그것은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자기 몰입은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몰입이 되어 있으면 예수를 바라보면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게 됩니다. 자기몰입에 빠져 있으면 끔찍한 결과를 내지만 예수님께 몰입되어 있으면 예수님과 같이 변화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3장 18절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는 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이 수건은 베일이죠. 베일은 율법을 말합니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율법의 돌을 굴려 치우고 주의 영광을 은혜 가운데서 은혜로우신 영광의 주를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 그 분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레위기 7장 30절 부터 31절에는 화목제물 가운데 요제가 나옵니다. 요제는 제단 앞에서 들고 흔드는 거예요. 거제는 들어 올리는 거고 요제는 흔드는 것입니다. 무엇을 흔드냐 하면은 제물의 가슴을 흔듭니다.
30. 여호와의 화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31.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제물의 그 가슴을 흔들었습니다. 여러분의 그 가슴이 아니라 제물의 가슴이였습니다. 여러분에 대해서는 잊어 버리십시요. 하나님은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의 너를 향한 사랑에 주목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가슴 예수님의 그 하트를 우리가 주목할 때에 그때에 비로서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한 참 된 의미의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예요. 그것을 모른채 너희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하지 않으신 다는 것입니다. 먼저 주님은 내 아들의 너를 향한 사랑에 주목하고 있느냐 질문하고 계십니다. 이 번제물의 가슴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기도 전에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충분한 것보다 더 넘치도록 만족시키 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것은 예수님이 그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또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 사랑의 가슴입니다. 가슴을 흔들으라는 말이 그 말이예요. 예수님의 사랑 번제물의 가슴이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을 여러분의 하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번제물의 가슴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 앞에서 흔들었습니다. 이것이 요제 입니다. 이 흔드는 것은 무엇이냐면 의식하는 것입니다. 기념하는 것입니다.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 가슴을 흔드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주의 사랑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의식하는 것 그것이 번제물의 가슴을 흔드는 요제 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식할 때 여러분의 제사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때입니다. 주님의 나를 향한 사랑과 그것을 의식하는 것이 없다면 아무리 내가 좋은 선행을 하고 좋은 것을 해도 나에게 유익이 없죠. 요제는 또한 이러한 측면이 있습니다. 31절에 보면 이 흔든 가슴을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돌리라고 했습니다. 이 가슴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했죠.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흔들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 그것이 양식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또한 이 가슴은 대제사장인 아론에게 속하게 한다라는 이 말씀은 대제사장의 양식이 된다라는 뜻입니다. 즉 참 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양식이 무엇이냐면 바로 우리를 향한 사랑 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양식은 그의 사랑입니다. 그 분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을 즐거워 하십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실 수 있도록 살리실 수 있도록 공급하실 때에 허용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것 저것 주님께 귀찮게 해드리는 것이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 사소한 기도는 내가 해결해야지 이런거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오해죠. 예수님은 빼앗김으로써 영광 받으시는 분이예요.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의 모든 것을 주고 주님은 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꼈던 것이예요. 예수님은 아무것도 먹지도 않았는데 제자들이 와서 누가 예수님에게 먹을 것을 갔다 주었느냐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돌아 왔는데 예수님이 무엇을 먹으셨는지 예수님이 활기차 있으시고 너무나 기뻐하시고 너무나 에너지 가운데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자들이 누가 예수님에게 먹을 것을 갔다 주었느냐 양식을 주었느냐 이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을 먹은 적이 없죠. 예수님은 다만 그의 모든 생명을 사마리아 여인에게 준 것 뿐이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심으로 영광 받으시는 분이세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으로 기뻐하시고 즐거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우리는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이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이 아론과 같은 제사장이죠. 그리스도의 여러분을 향한 사랑이 여러분의 참 된 양식입니다. 그 흔든 요제 그리스도의 하트 가슴을 상징하는 그 흔든 요제를 제사장에게 준다라는 말은 그 제사장이 바로 오늘날에는 또한 여러분 입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양식은 바로 흔든 요제 그리스도의 사랑 이라는 것이예요. 그 분의 사랑이라는 그 양식을 한 번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먹으시길 바랍니다. 매일의 양식으로 삼으십시요. 수 년전에 알고 들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즉 요제 흔들면서 양식으로 먹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화목제 입니다. 그리스도의 순종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날마다 의식하고 기념하며 양식으로 삼을 때 하나님께 동일한 냄새로 양식이 되며 여러분의 삶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하나님의 평강이 영과 혼과 육의 모든 면에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잘 못된 생각들이 나에게 있다면 오늘 이 시간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하나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임을 이제 믿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이제 나의 것임을 믿습니다. 사단은 나에게 달려들고 사단은 나를 쓰러트리며 나의 힘으로 대적하라고 참소하고 공격합니다. 하나님 내가 주님을 멀리 떠나 하나님을 멀리 떠나 나의 힘으로 이 땅을 살아가지 않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 하나님의 부유함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온전히 나에게 주어졌음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는 참 된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이 땅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요제 그 번제물의 가슴을 흔들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늘 의식하며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가 옛날 옛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식하고 높여드리며 요제의 삶을 살 때에 하나님의 은총과 생명과 평강이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의 모든 면에 차고 넘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영혼을 부유케 하여 주시옵소서. 고아의 영은 떠날지어다 가난의 영은 떠날지어다 궁핍의 영은 떠날지어다 이제 아버지의 것은 다 내것이니 부유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축복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눈 감아 줄 수 있는 부유함을 허락하여 주시고 관대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비좁은 마음으로 지옥같은 삶을 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천국이 우리의 영혼 가운데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시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이심을 믿고 주님 넉넉하고 풍성하고 부유한 마음으로 이 땅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번제물의 가슴을 흔드는 그 요제를 통하여 하나님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흔들며 살아가는 인생 되게 하여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식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높여 드리며 살아가는 인생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그 사랑 때문에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의 운명은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의 운명이 있습니다. 주님, 다른 곳에서 나의 운명을 찾지 않게 하여 주시옵시고, 둘째 아들 처럼 아버지를 멀리 떠나 정말 돼지와 같이 나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고 나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비참한 인생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것이 내 것임을 깨닫고 주님을 즐거워하는 인생이 나의 인생의 목적과 중심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예배가 얼마나 놀랍고 큰 은혜 인지를 주님 고백합니다. 하나님 세상은 이곳 저곳으로 멀리 떠나 나의 유익과 나의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그 끝은 허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예배는 주님 늘 있는 일상적인 예배가 아니라 주님을 높여드리고 주님을 찬양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흔드는 놀라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예배임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의 인생에 그 중심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높여 드리고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를 송축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와 선물인지 하나님 깨닫게 하여 주시옵시고, 날마다 주님 앞에 말씀 앞에 기도 앞에 아버지의 집에 거하는 것으로 즐거워 하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축복인지 세상은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결코 은혜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시고 아버지의 집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 땅을 살아가지만 내가 아버지의 것이며 아버지의 능력과 지혜로 살아가는 인생임을 고백하고 또 그 능력과 지혜로 살아가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하여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삶에 가장 작은 것까지도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께 구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며 주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며 즐거워 하며 살아가는 인생되게 하여 주시고 나의 것이 아닌 아버지의 지혜와 능력이 내 삶 가운데 흘러 넘쳐 아버지께서 통치하시고 아버지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놀라운 하늘의 나라가 천국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고 경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기름부어 주시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번제물의 가슴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믿고 흔들며 나아갑니다. 우리 자신의 어떠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순종과 그리스도의 선물로 주신 의를 받아서 의지해 나아가는 축복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모든 오해와 제약과 경계가 모두 무너지게 하여 주시고 우주보다 더 넓은 하나님의 부유하심과 그 용서하심과 그 사랑의 품을 늘 인식하고 믿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며 하나님의 것이 나의 것임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운명임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가 참 나임을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 안에 안식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흘러 넘치는 은혜와 의와 생명을 충만히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그치게 하여 주시고 이 한반도와 모든 눈물 짓는 땅과 소란스런 땅 가운데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임직 훈련위해 기름부으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외롭고 또 힘든 질병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환우들 찾아가 주셔서 치유하여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기뻐 뛰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놀라운 건강한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드린 예물 위에 기름 부으시고 쓰이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위로 교통 새롭게 하심의 역사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종과 선물로 주신 의를 요제와 같이 내 삶 가운데 가득히 흔들며 하나님의 온전한 화목제의 축복을 살기를 소망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고 흠없고 거룩한 교회 위에 선교사님들을 위해 나라와 민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언하옵나이다. 아멘